라이프로그


카라, Break it, DSP, 노답 잡담



2007년에 데뷔한 걸그룹의 경쟁 구도는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 세 그룹의 3파전이었다. 카라는 그 중에서도 고난의 행군이 가장 길었던 팀이다. 정상급 걸그룹으로 도약한 이후에도 앞의 두 그룹보다 어쩐지 밀린다는 인상을 떨치기 힘들었다. 정상으로 질주하기 전 기나긴 고난의 행군의 출발점에는 <Break it>에 있었다. 나는 이 <Break it>의 실패,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기록한 부진이 이후 아이돌 음악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Break it>을 높게 평가하고 있던 나는 오늘에서야 살짝 배신감 같은 감정을 느꼈다. 이 곡을 처음 들은 지 거의 6년 만에 표절 의혹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내가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아니다.

카라 정규 1집 [The First Blooming] 표지

카라의 <Break it>은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의 <Baby One More Time>을 표절한 것으로 판단된다. '표절'이 도대체 무엇인지 기준조차 애매한 것이 현실이지만 내가 "의심된다"도 아니고 "판단된다"는 표현을 쓴 것은 그만큼 곡 전반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도입은 물론 하강과 결말에 이르기까지 거의 똑같다. 심지어 후렴을 뒤에 깐 상태로 나오는 애드립이 나오는 것도 흡사하다. 표절 의혹이 이상하리만치 없었던 것은 아마 카라가 1집으로 그리 뜨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카라 멤버들은 '브리트니 세대'에 해당하고 한승연과 니콜은 미국 생활도 했었으니 <Baby One More Time>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라 멤버들을 탓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표절의 책임은 우선 작곡자에게 있고 아이돌 그룹의 타이틀 결정권자는 기획사 경영진이기 때문이다.

카라의 타이틀이 표절 의혹에 휩싸인 경우가 이것만은 아니다. <Break it>은 카라를 띄워주지 못했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 뒤 카라에게 큰 성공을 안겨준 <Pretty Girl>은 꽤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그 대상은 천만 뜻밖에도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의 <Rock is Dead>였다.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의 곡이지만 <Pretty Girl>의 근본은 <Rock is Dead>에 있다고 판단된다. <Pretty Girl>(School Rock Ver.)을 들어보면 둘 사이의 연관성이 더욱 분명해진다. <Pretty Girl>의 표절 책임은 스윗튠(SweeTUNE, 한재호·김승수)에게 있다. 스윗튠은 이후 카라의 전성기를 함께 해 왔지만 그 초기에는 이처럼 문제가 생길 여지를 남겨둔 곡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Pretty Girl>은 똑같이 표절 의혹을 제기할 만한 곡인데도 <Break it>과 완전히 다른 성적을 기록했다.

곡의 완성도는 <Break it>과 <Pretty Girl>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기획력에 있었다.


결과론이지만 2007년에 데뷔한 걸그룹의 흥행 코드는 '소녀'였다. 곡 자체가 살랑살랑하지 않고 센 편인 데에다가 뮤직비디오와 당시 활동 영상을 보면 <Break it>은 걸스힙합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다. 10대 후반~20대 초반 연령대의 걸그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성층을 공략해야 하는데 <Break it>은 그러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같은 음반에 있는 <맘에 들면>이 타이틀이 아닌데도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을 보면 카라 초기의 실패는 타이틀의 문제였다고 여겨진다. DSP는 똑같은 실수를 카라 정규 2집 [Revolution]에서도 반복했다. 카라 2집의 타이틀은 <미스터>가 아니라 <Wanna>였다. 당시 후크송 열풍에 편승하려고 만든 것으로 보이는 <Wanna>는 타이틀로서 얼마 버티지 못했고 실질적으로 <미스터>가 그 역할을 해내게 되었다. <미스터>가 워낙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묻혔지만 DSP의 이런 고질병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5인체제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정규 4집에서 카라는 <Break it> 수준의 모험을 감행했다. 아이돌 음악의 제작자로서는 가장 락에 가까운 음악을 추구하는 스윗튠은 굉장히 강한 곡인 <숙녀가 못 돼>를 카라에게 제공했고 DSP는 <Break it>보다 더 중성미에 기운 활동방향을 잡았다. 당시 6년차에 접어든 걸그룹이었으니 여성층 공략으로 방향을 선회할 필요는 있었지만 카라의 전환은 워낙 급격한 것이어서 이전만큼 흥행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음반 판매량은 최대였지만 음원순위에서 빠르게 밀렸던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동적인 청중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참고로 필자는 두 곡을 다 좋아한다.) 이때 카라의 흑역사 중 하나인 '라디오스타 사건'이 터졌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그것으로 당시의 급하강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우연의 일치일 것 같지만 카라의 정규 1집과 4집은 꽤 닮아있다. 1집은 [The First Blooming]이었고 4집은 [Full Bloom]이다. '첫 개화(開花)'에서 '만개(萬開)'로 옮겨갔다. 이보다 극적이고 주목해야 할 공통점은 타이틀이다. 1집과 4집의 타이틀은 모두 일반적인 '소녀' 이미지에서 벗어난 방향이었다. 1집의 실패는 카라가 2007년 연말 시상식을 숙소에서 TV로 지켜보면서 라면을 끓여먹게 만들었다. 4집의 미지근한 흥행은 5인체제의 마감을 알렸다.

아무리 좋은 곡을 들고 와도 활동방향을 잘못 잡으면 가수를 살려줄 수 없다. 그것이 기획자(producer)와 연예기획사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DSP는 소속 그룹의 팬들에게도 비난받는 기획력을 줄곧 보여줬는데, 이제 그들에게 마지막 희망인 카라와 레인보우를 어떻게 할지 의문스럽다. 레인보우는 올해 2월에 복귀했지만 2주 만에 활동을 종료했다. 카라가 오늘 5월 26일에 돌아왔다. 그녀들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곡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황당한 기획력으로 숱한 기회를 날린 DSP의 앞날이 밝아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