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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프리티 랩스타 3] 4회 감상 : 전소연 라이즈 잡담



[언프리티 랩스타 3] 4회 감상
전소연 라이즈


[언프리티 랩스타 3] 4회에서 전소연은 평소보다 더욱 각성한 것 같았다. (출처 : 서울경제)

1. [언프리티 랩스타 3](이하 UR3)의 핵심 라이벌로 자리잡은 제이니와 육지담의 디스전은 사적 감정에 따른 대립이 전면적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디스전 이전까지 보인 것은 제이니가 내용만 놓고 보았을 때 적실한 공격을 했지만 육지담보다 기량을 보여주자 못한 상황에서 열등감 폭발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이었다. 이번 디스전에서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뛰어난 가사 전달력을 보여준 것은 육지담이었고 그녀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제이니의 공격적 가사와 랩이 쿠시에게 높은 평가를 받으며 반전을 만들어냈다. 3회 말미에 나온 예고편에서 하이라이트처럼 비춰졌지만 살벌한 감정대립 이상의 재미는 없었다. 다만 균형추가 많이 기우는 경쟁이 많았던 4회에서 그레이스와 애쉬비의 디스전과 더불어 호각세를 보여준 디스전이었다는 정도의 평가는 유효할 것 같다.

2. 자이언트핑크가 의외로 가사를 잊고 쉽게 무너지는 바람에 절대강자가 사라진 가운데, 전소연이 4회를 집어삼켰다. 그녀의 인성을 향한 비방이 제기될 정도로 UR3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자신감과 존재감은 대단하다. 전소연이 제법 오랜 준비시간을 거친 뒤 [프로듀스 101]에서 입었던 교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을 때, 균형추가 전소연 쪽으로 기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쿨키드가 정신줄을 놓는 바람에 소화를 거의 하지 못한 1절은 [프로듀스 101] 시절의 전소연을 겨냥한 디스로 시작하고 있었다. 전소연이 자신의 약점일 수 있는 부분을 역이용해서 상대를 무력화한 것이었다. 결정타는 전소연이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면서 말을 놓겠다고 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쿨키드는 1·2절 모두 제대로 응수하지 못했고, 2절까지 그런 모습을 보자 전소연은 화를 억누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제대로 싸워보려고 준비했는데 그러지 못하니 분이 터졌던 모양이다.

3. 미료와 하주연, 방송이 나간 직후 ‘친목질’로 이미 호된 공격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근본을 따져보면 UR3의 이상한 경쟁방식과 묘하게 허술한 규칙 떄문에 빚어진 상황이지만, 둘도 잘한 것 없다. 기껏 반전과 생존으로 드라마를 쓰고 있던 하주연은 동정표를 거하게 깎아먹을 것 같다. 가사를 살짝 잊었다가 똑같은 실수를 한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정신을 차리고 계속 랩을 했던 유나킴의 분투가 기억에 남는다. 그런 유나킴이 하차하게 될지도 모를 상황, 쿨키드와 유나킴의 디스전이 설마 이번 주에 방영되겠지 했는데, 엠넷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다음 주로 미뤘다. 심지어 둘 중 누가 탈락했는지 모르게 하려고 예고편에 모자이크도 들어가있었다. ‘방송국 놈들’은 집요하다.

4. 첫 디스전을 제외하면 대체로 쿠시의 판단에 동의할 수 있었고, 트랙미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다와 전소연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극대화해서 트랙을 딸 수 있었다. UR3 제작진이 ‘더블트랙’을 채택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 만큼, 지금까지 본 것과 달리 나다의 랩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쿠시의 평처럼 훅이 좋았고, 클럽음악에 최적화된 가사까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전소연은 당돌한 수준을 넘어 각성한 막내의 정체성을 그대로 녹여낸 가사와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4회에서 전소연은 최악의 공연만 보여주지 않는다면 관객이나 시청자의 투표로 승부를 판정하는 상황에서는 무적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2회 팀미션에서 관객투표로 진 적이 있지만 개인전에서는 진 적이 없다.) [프로듀스 101]로 획득한 인지도에 더하여 걸그룹 래퍼에 기대되는 것 이상의 기량을 바탕으로 전소연은 고공행진하고 있다. 무서운 신예가 틀림없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자이언트핑크도 무너지는 날이 있었다.

4-1. UR3 제작진은 관객이나 시청자의 투표로 승부를 판정하는 상황을 되도록 만들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전소연에게 터무니 없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난 3회의 1:1 배틀에서 전소연에게 진 하주연이 얻은 표가 다른 1:1 배틀팀의 승자들보다 많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

5. 별도의 글로 써야 할 문제일지도 모르겠는데, 4회 방영 직후 전소연을 향한 공격적 여론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개중에서 랩씬의 디스문화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경우라면 납득할 수 있다. 외모 때문에 고민하던 사람이 외모를 디스전에 활용해도 되느냐는 지적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여성래퍼의 디스전이 남성래퍼의 것보다 더 원색적이거나 실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여성의 랩이 남성의 것보다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지만, [쇼미더머니] 시리즈나 컨트롤 디스전에서 나타난 모습을 놓고 보면 이런 평가는 성차별에 가깝다. 둘째, 인성을 비난하는 것이다. 아이돌의 미덕은 늘 살갑거나 겸손한 (척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강한 가운데, [프로듀스 101]의 잔상이 남아있는 전소연에게 그런 기대를 하고 있어서 인성 비난이 나오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연예인의 천편일률적 상품화에 반대하면서 전소연의 인성을 비난한다면 이율배반이 아닐까. 실력으로 검증받는 자리에서 인기뿐만 아니라 실력으로도 살아남고 있는 신예의 냉정과 자신감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나는 불편하다. 초심을 잃고 나태해져서 오만만 남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이상, 전소연은 응원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6. 4회에서는 주목할 반전이 있었다. 하위권으로 취급되던 나다와 제이니가 디스전에서 승리하고 트랙미션까지 올라간 것이다. 그동안 나다는 자이언트핑크에 묻어가거나 탈락미션을 극적으로 피해가는 ‘생존왕’ 이미지로 비쳤는데, 방심하고 있던 자이언트핑크에게 치명타를 날렸고 트랙미션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가며 후일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제이니는 강도 높은 퍼포먼스들을 준비한 육지담과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만으로도 선전이라고 할 만했다. 가사 전달력이 향상된다면 기왕 육지담과 형성된 라이벌 구도는 더욱 흥미로워질 것이다. 그레이스와 유나킴은 디스전에서 대진운이 유난히 나빴다. 그레이스는 기발한 감각을 바탕으로 좋은 공연을 선보였는데도 지난 1:1 배틀에 이어서 또 한 번 탈락 위기를 겪었다. 유나킴은 2:1 배틀에 직면했으니 그 정도 실수를 한 것이 이해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존 하위권 래퍼들의 성장이 엿보이는 가운데, UR3는 “언니는 없는” 2막에 접어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