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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월드'를 받아들이는 자세 잡담



"Trump Triumphs."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받아든 뉴욕타임스 홈페이지의 메인을 장식한 문구다. 물론 그 옆에 이 승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러워하는 필진의 칼럼이 함께 있었다. 세계를 뒤흔든 하루였다. 2016년 11월 9일, 미국은 '트럼프 월드'가 되었다. 아무리 한국 언론, 정가, 학계의 분석이 힐러리 클린턴에 편향되었다고 하지만, 미국사회에 안긴 충격이 크다는 점도 부정하기 힘들다. 현실로 다가온 '트럼프 월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붉게 물든 미국, "소외된 모두 오른발을 한 보 앞으로" (출처 : 뉴욕타임스)

1. WASP의 나라, 다수의 반격

미국은 다문화의 용광로를 표방하더라도 실상은 백인-앵글로색슨-개신교도(WASP)가 여전히 다수자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국민국가다. "함께 강하게(strong together)"를 선거구호로 내걸었던 클린턴이 개인적으로도 지도자가 되기에 부족한 면모를 보인 탓이겠지만, WASP들이 WASP 아닌 이들에게 점점 지분을 내 주면서 함께 사는 것에 한계를 느끼며 결집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원선거까지 공화당이 민주당을 압도한 것은 트럼프와 클린턴의 개인경쟁뿐만 아니라 보수적·안정지향적 WASP와 다원적 미국인 사이의 집단경쟁이 전자의 승리로 끝났음을 뜻한다. 전국의 농촌에서, 대학 미취학 백인이 분포한 중서부에서, 중장년층에서 트럼프의 강세가 두드러진 것은 외국인과 주류 언론의 눈에 잘 보이지 않은 채 존재하는 다수의 WASP가 반격에 나선 결과다.

위 그림보다 심각한 상황, 동서부 연안의 대도시를 제외하면 클린턴의 궤멸적 패배다. (출처 : 뉴욕타임스)

2. 알 수 없는 민심

뉴욕타임스, CNN을 비롯한 미국 주류 언론의 공신력 추락은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꼭 그들의 정치적 성향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한국의 2016년 총선,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보였듯 최근의 선거 예상은 자주 빗나가고 있다. 여론조사가 곧 여론은 아니라는 새삼스러운 비판을 거듭 새기게 된다. 언론이 '밑바닥' 표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사실은 언론이 제도화되고 화이트칼라 전문직의 영역으로 정착하며 다수의 현실과 세계관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이 점은 정가, 학계도 마찬가지다. 정가와 학계는 언론보다 더 빨리 다수와 멀어졌을 수 있다. 교육과 소득의 비례관계가 계속 커진다면 (언론 입장에서) 예상 밖의 선거결과는 얼마든지 나올 것이다. 국민전선이 점점 바람을 타고 있는 프랑스가 다음 무대가 될 수 있다.

'트럼프 월드'의 전조였던 브렉시트, 역시 선거결과 예상이 빗나간 사례다. (출처 : BBC)

3. 세계화를 향한 선진국 대중의 저항, 국민국가의 재림

이번 선거결과를 여러 언론에서 이미 고립주의의 확산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최근 추세에서 더욱 큰 그림을 보자면, 세계화의 수혜자로 여겨지던 선진국이 세계화에 역행하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는 신자유주의뿐만 아니라 다원주의라는 구성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원주의에 따른 유색인종 인구의 합법·불법 유입은 백인 중심으로 구성된 기존 사회의 안정성을 잠식하는 것이었다. 불안은 취업, 치안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확산되었다. 근대 민주주의의 선봉처럼 여겨지던 영국과 미국의 최근 선거결과를 보면, 선진국 국민이 세계화에서 후퇴하며 다시 국민국가의 이익에 집중하는 경향을 읽어낼 수 있다. 2016년 한 해 국제정세를 보면서, 한 동안 유행한 초국가주의(트랜스내셔널리즘) 등 국민국가에서 이탈하려고 한 시도가 지적 허세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커졌다. 국민국가체제는 여전히 강건하다. (세계화로 이익 챙길 것은 챙기고 정작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선진국을 향한 도의적 비판은 정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큰 힘에 큰 책임을 질"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효과는 없을 것이다.)

4. 경제와 젠더, 영향이 불확실한 변수들

과연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와 공화당으로 몰려간 다수 표심은 경제난에 좌절한 것일까? 미국 전체의 경제가 호황인지 불황인지는 의견이 엇갈리는 편이다. 2000년대 말 금융위기의 여파가 아직 지속되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지만, 셰일가스 혁명과 제조업 부활로 회복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만약 경제가 영향을 준 측면이 있다면, 커져가는 소득 격차와 그에 따른 사회적 이동 가능성의 감소를 들 수 있다. '샌더스 열풍'은 민주당에서 일어났고 '트럼프 열풍'과 정반대의 가치관을 추구한 것이지만, 소득 불평등에 반발하는 심리를 공략한 점에서 '트럼프 열풍'의 이란성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트럼프 성추문이 터졌을 때 이번 대선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가 되었다. 여성 표심 공략에 클린턴이 무능했다는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젠더는 거주지, 소득, 연령, 학력 등에 묻혀버리는 변수임이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이다.

뱀발

트럼프가 만약 유색인종, 이슬람을 적대하는 기조를 실제 정책으로 구현한다면, 미국은 인권을 빌미로 중국을 견제하기가 어렵게 된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트럼프가 애초에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에 관심을 가질 위인이 아닐 것 같지만...

한국 정가, 외교가는 트럼프에 충분한 대비를 하지 않았다. 공화당에 나름대로 연결망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대미관계가 불리해질 때 균형추가 대중관계일 텐데, 한 동안 괜찮았던 대중관계가 사드 배치로 꼬이는 바람에 불확실성이 매우 커졌다. (애초에 트럼프가 될 줄 모르고 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트럼프 행정부가 태평양에서 후퇴하는 외교정책을 선택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트럼프가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에 강하게 반대하며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공언한 만큼, 이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정세는 더욱 중국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할리우드를 포함한 연예계와 문화계의 유명인사들은 미국의 다수 구성원인 WASP가 아니라 다원적 미국인과 고소득 전문직종을 대표한다. 그들의 선거운동이 오히려 다수 WASP에게는 클린턴을 더욱 부르주아처럼 보이게 만들지 않았을까?

역시 인간은 재미있다. 그래서 문제다.

덧글

  • 전두환이 옳았다 2016/11/10 05:07 #

    동아시아가 미중교체기로 들어가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군요.
    오바마놈의 강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들을 되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개성공단 재개, 사드배치 철회, 위안부 합의 파기, ...
  • 京靑 2016/11/10 11:36 #

    사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개성공단과 위안부 문제가 이전 상태로 복구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트럼프의 성향상 북한을 도와주는 것으로 보이는 정책을 곱게 보지 않을 것이고, 한국-일본 간 역사적 문제는 더더욱 무관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 별일 없는 2016/11/10 07:48 #

    군비를 줄인다고 하지 않으니 영향력포기는 이르죠
  • 포스21 2016/11/10 08:34 #

    뭐 트롬프의 주장을 요약해 보면 "동맹국이 공객 받았을 때 , 그나라가 미국에게 필요한 나라인지 , 의리를 지켰는지를 검토한 뒤에 파병여부를 결정한답니다. " 사실상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의 포기 라고 보이는데요?
  • 별일 없는 2016/11/10 09:15 #

    역으로 필요한 나라라면 개입이나 심지어 침공도 불사한다는 이야기군요. 결론은 우리의 처신에 달린거네요.
  • 京靑 2016/11/10 11:43 #

    미국의 전체 군비를 줄이지는 않겠지만, 주둔국에게 방위비 부담을 전가한다면 주둔국 외교의 무게추는 미국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군사적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지, 중국에 어떤 행보를 취할지는 향후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년간 구축된 안보체제는 일거에 바꾸기 어려운 거싱고, 일본 중심의 태평양 방어체제를 강화하는 기조는 오바마 행정부와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군사적 영향력이 유지되더라도 TPP를 포기한다면 태평양 국가들의 대중국 의존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군사적 후퇴보다 경제적 후퇴 쪽에 더욱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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