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이지혜, "로켓파워" (2011. 11.) 발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불후의 명언으로 인용되는 이 말을 자주 실감하는 현장이 대중가요다. 가수 개인의 역량이 아무리 탁월해도 소속사의 기획력, 대중매체의 주목이 없으면 성공하기가 어렵다. 현재 한국 가요계는 더욱 그런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했던 1992년, 지금의 [뮤직뱅크] 같은 존재였던 [가요톱텐]은 김흥국이 <59년 왕십리>를 부르는 무대이기도 했다. 2000년대 초 송대관과 태진아가 궁극적으로 윈윈이 된 대결구도를 형성하던 시절을 제외하면, 그 뒤 금요일에서 일요일에 이르는 가요방송에서 10~20대 아이돌 이외 가수를 찾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오디션에 출연하지 않으면 신예로 뜨기 어려운 것도 '좁아지는 문' 현상의 일부일 것이다.

사뭇 거창하게 시작했는데, 이 글에서 소개할 곡이 엄청난 명곡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5점 만점에 2점이나 2.5점 정도 줄 법한 곡이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해명할 차례다.



이지혜, <로켓펀치> (2011. 11.)
― 될 사람은 되고 안 될 사람은 안 되는가

- 작사 : 조영수·안영민
- 작곡 : 조영수
- 편곡 : 이유진

이지혜는 샵(S#arp) 해체 이후 솔로활동에서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뜬금없는 '가슴 논쟁'으로 솔로활동의 시작을 장식했던 것이 액땜이 아니라 제대로 부정이 된 듯하다. 음반보다 예능에서 재미를 보고 주목받는 것을 이지혜 본인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아직 가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서 괜히 안쓰러울 때가 있다. <로켓파워>가 나온 지 5년 정도 지난 2016년 하반기, [해피투게더]에서 이지혜는 이 곡에 쓴 안무 '활어춤'을 분량용 히든카드로 꺼내들고 말았다. 그랬다, <로켓파워>는 발매 직후 빠른 속도로 묻혔다.

그런데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사연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재활용하려다 실패한 곡 아닐까? 무슨 소리냐면, 작사와 작곡에 이름을 올린 조영수를 보면 된다. 2009년부터 2010년 초까지 티아라로 성과를 거두던 조영수는 2010년 6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다른 걸그룹의 타이틀을 제작하며 연달아 대박을 쳤다. 티아라 이후 조영수의 입지를 더욱 확실히 다져준 것은 <마법소녀>, <아잉♡>, <샹하이 로맨스>라는 곡, 오렌지캬라멜이라는 걸그룹이었다. 속된 말로 '뽕끼'라고 하는 비트에 휘성과 김희철이 쓴, 당시 기준에서 기상천외한 가사를 얹으니 '선병맛 후중독'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작품이 쏟아졌다.

<로켓파워>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은 오렌지캬라멜의 것이었다. G모 사이트에 검색해보니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었다. 추측건대, 조영수는 처음에 오렌지캬라멜을 염두에 두고 이 곡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렌지캬라멜에게 이 곡이 가지 않았다. 2011년 3월 <방콕시티>를 발표했던 오렌지캬라멜은 아시아 도시들로 곡을 이어나가겠다고 한 상태였고, 그래서인지 그해 10월 <샹하이 로맨스>를 발표했다. 아마 이 과정에서 <로켓파워>를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조영수의 눈에 들어온 것이 복귀에 시동을 건 이지혜가 아니었을까?

지금이야 예능에서 보여준 활약 때문에 이지혜가 개성적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지만, 그 전까지 가수활동을 하던 이지혜는 맑은 목소리를 가지고 그에 걸맞는 노래를 부르는 평이한 캐릭터였다. 조영수와 이지혜 모두 당시 조영수가 밀고 있던 '선병맛 후중독'은 오렌지캬라멜로 이미 검증됐으니, 이지혜도 이미지를 반전하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 듯하다. 실제로 애프터스쿨 신입생이던 오렌지캬라멜의 구성원은 활동을 시작할 때 못마땅한 기색이 있었지만 결국 본진보다 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래서 기대를 걸었을 텐데, 결과는 이지혜 자신도 흑역사라고 소개할 정도가 되고 말았다.

부질없는 가정을 해 보자. 오렌지캬라멜이 불렀다면 <로켓파워>도 오렌지캬라멜의 '선병맛 후중독' 성공신화가 되었을까? 그랬을 것 같다. 이지혜를 탓할 일이 아니다. 내용물(contents)보다 상표(brand)가 우선시되는 시장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가수는 계속 음반을 낼 수밖에 없다. 그래야 예능에 나와서 분량 뽑겠다고 '활어춤'이라도 출 수 있다. 웃기면서 슬픈 일이다. 결과가 좋게 풀린 과거를 소환하는 것은 그럭저럭 할 만한 일이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던 과거를 소환하는 것은 선뜻 내키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